나보다 문학에 대해 잘 아는 친구의 말로는 요즘 트렌드는 사실적인 '일상'과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예로는 '슬기로운 깜빵생활'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윤식당' 등이 있다며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주었다.
소설 [운명]을 읽고 나눈 이 대화로 인해 나는 모든 종류의 일상물을 정말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트렌드가 '일상'인 것은 사람들은 자극적인 현실에 반해 소소한 사람들의 부드러운 일상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라는데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운명]에 대해서 이렇게 가볍게 얘기하는 것은 무식하며, 윤리적으로도 어긋나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유대인의 표시인 노란 별을 가슴에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 갑자기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고, 그 안에서 착실한 죄수로 일상을 보내는 것. 위 내용이 못마땅한 이유는 내가 저러한 상황에 놓였어도 동일하게 행동했을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고, 이러한 정보는 200페이지 분량이 아니라 하다못해 나무위키 수십 페이지로 더 심도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린 이 책에서 더 뛰어난 생생한 정보는 기대할 수 없다. 분하지만 이 부분이 임레 케르테스가 바라던 바일 것이다. 그는 다소 밋밋하게 제 3자의 시선에서 강제 수용소의 죄수로서의 일상에 대해 서술한다. 정작 그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 안에서의 '삶'이었을텐데, 독자는 '죽음'을 공유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기대를 배반함과 동시에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고발함은 그가 글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로 세련된 투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겪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나의 흥미를 채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지는 말자.
'대학생 일상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으로의 긴 여로 (0) | 2021.07.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