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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일상/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밤으로의 긴 여로

by 화공생명공학과 19학번 2021. 7. 22.

내가 그려본 제임스 타이론씨의 여름 별장 거실의 모습이다. 나는 이 공간을 그려보면서 꽤나 크고 멋있는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타이론씨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여름 별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타이론씨는 별장을 제외하고는 집이 없다. 배우였던 그는 오랫동안 싸구려 호텔들에 옮겨다니며 살았고, 메리 부인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서도  현재까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나마 여름에는 이 여름 별장에 오지만, 그마저도 집을 가꾸는데 타이론씨가 관심이 없다.  

 

[1막]

내게 타이론씨 가족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타이론씨와 그의 부인은 아직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두 아들들은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것처럼 보였다. 제임스 타이론씨는 무지하고 고집이 강하고, 메리 타이론 부인은 신경 과민이고, 큰아들 제이미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에드먼드는 현재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이 화목함 앞에서는 사소한 단점처럼 보였다. 

 

[2막 1장]

하지만 제임스와 제이미가 잠시 외출한 사이 메리 타이론 부인이 낮잠을 청하기 위해 2층에 올라간 순간부터 이 평범한 가족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에드먼드는 하녀 캐슬린을 시켜 몰래 술을 먹는데, 현재 건강이 좋지 못해 의사인 하디 선생이 술을 끊으라고 권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없는 새를 노린 것이다.

 

[2막 2장]

금방 제이미가 돌아와 어머니의 옆을 지키지 않은 에드먼드를 다짜고짜 나무란다. 바로 그 타이밍에 메리가 내려오고, 에드먼드는 어머니에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치는데 제임스는 그런 에드먼드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메리는 다소 억지스럽게 그런 제임스의 주위를 환기시킨다.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무엇인가를 직감한다. 하지만 메리는 단호하게 모르는 척 넘겼다.

 

곧 제임스씨마저 집으로 들어오고, 메리의 상태를 본 제임스씨는 그녀에게 왜 견디지 못하느냐며 나무라는데, 여기서 그녀가 마약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메리의 상태는 더 나빠지는데 남편은 그녀에 대한 비난을 두 아들은 냉소를 숨기지 않았고, 갑자기 전화가 오면서 메리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간다.

 

전화는 다름아닌 에드먼드가 폐병이라는 하디 박사의 진단 결과였다. 제임스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제이미에게 알렸는데, 에드먼드를 요양소에 보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제이미는 폐병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병이 아니니 제발 에드먼드를 싸구려 요양소에 방치하지 말라고 한다. 제임스는 제이미에게 아일랜드를 시골취급하지 말라며 화를 낸다. 일단 이 사실을 에드먼드에게 알리기 전에 시내에 나가 긴장을 풀어주어야겠다며, 세 남자는 밖으로 나간다. 메리는 나를 떠나가지 말라고 하지만 그들의 부재가 갖다준 쓸쓸함에 기뻐한다.

 

[3막]

예상보다 세 남자는 집에 일찍 들어왔고, 메리는 실망하면서도 매우 기쁜 기색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화목함은 다시 싸움으로 크게 번진다. 메리는 약과 술에 취해 말을 떠벌이지만 그녀가 여전히 어찌나 현명한지 본인을 비롯한 세 남자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인다. 그녀 자신은 거짓말이나 하는 마약쟁이이며, 남편은 가난에 찌든 무지한 아일랜드인, 제이미는 주정뱅이 건달, 에드먼드는 타고난 겁쟁이라니. 이보다 명료한 설명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처해야만 했던 일들을 계속 반복해서 호소한다. 배우인 남편은 임신한 그녀를 싸구려 호텔에 내버려두고 들어오지 않았고, 에드먼드를 출산할 때 싸구려 돌팔이 의사의 약물 오용으로 인해 약물에 중독되었는데도 여전히 인색한 남편과 싸구려 호텔에 묵으며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에드먼드는 이미 흥분한 메리 부인에게 다시 한 번 불을 붙인다. 요양원에 가야 한다고. 메리 부인은 에드먼드를 놓아줄 수 없다며 뒤집어진다. 하지만 이내 에드먼드가 떠나길 바라는 메리의 마음은 들통이 나고만다. 메리 부인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간다.

 

[4막]

메리는 과거 속을 헤매는 미친 유령이 되어 집을 휘젓고 다니고, 에드먼드와 제임스는 술을 마시면서 카드 게임을 빙자해 가족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잠깐 제임스가 퇴장하고 술에 잔뜩 취한 제이미가 에드먼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에드먼드를 얼마나 질투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불행하길 바라는지. 제이미 말에 따르면 그는 에드먼드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원하지만 모든 힘을 다해 그것을 방해할 것이라고 한다. 다시 돌아온 제임스와 제이미와 에드먼드는 끝나지 않는 말싸움을 계속한다. 메리가 내려와서 과거를 허공에 내뱉으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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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세 남자가 한 여자의 심기를 얼마나 살살 살피는지 나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우울증 환자라고 생각했다. 메리가 마약 중독자라는 것, 에드먼드가 폐병에 걸렸다는 것 그 사실조차도 메리에게 납득시킬 때 세 남자가 극도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정말 흥미로웠다. 메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남자들에 대한 경멸은 쉽게 납득갈만하다.

 

우선 제임스를 보자. 메리를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한 남자이자, 그녀를 위한 좋은 전문의를 두는 데에는 돈을 아끼는 인색한 남자이다. 그녀가 마약에 중독된 후에도 제대로 요양을 시키거나 전문 치료를 받게 지원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녀를 정신적으로 안정시켜줄 수 있는 환경조차 신경써주지 못했다. 그가 돈을 쓰는 곳은 그녀가 육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보모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녀를 돌보지는 않는다.

 

제이미는 메리의 관심을 끌고 싶지만 에드먼드보다 부족한 형이다. 심지어 늦둥이인 에드먼드에게 온갖 관심을 빼앗긴 제이미는 에드먼드의 행복을 굉장히 경계한다. 에드먼드가 행복하고 잘될수록 상대적으로 제이미는 작아졌다. 제이미는 에드먼드를 경계하면서도 끝없이 방탕한 생활로 망가져 메리의 걱정을 독차지한다.

 

에드먼드는 메리의 외관뿐만 아니라 신경질적인 부분까지 똑같이 닮았다. 에드먼드는 메리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것만으로도 메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다. 약에 취한 메리가 에드먼드를 갖지 말았어야 자신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해도 에드먼드는 그녀를 아프게 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걱정하고 사랑을 갈구한다. 

 

메리는 과거 속을 헤메는 유령이 될 때서야 이 끊어낼 수 없는 세 남자로부터 자유롭다. 아마도 그들을 사랑하겠지만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벗어나야만 할것이다. 메리가 고결하다거나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다던가 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반복될 이 갈등을 끊어내기 위해서도 메리가 이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필수적인 것 같다. 가족이라는 질긴 인연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대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비극'으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나쁜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의 끝에 기다리고 있을 달콤한 결말을 참을 수 없어 미친듯이 책장을 넘긴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용을 건너 읽는 습관 때문에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선 나의 상상을 곁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만이 이 블로그에 올라올 수 밖에 없다. 참을성 있게 꼼꼼히 읽으며 더 잘 익은 달콤한 결말을 수확하는 독서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이 글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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